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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작곡가 이영조 선생님과 함께 한 경기도 용인여행
작곡, 그릇은 빌려도 내용은 내 것 담아야
[웰빙코리아뉴스] 임규태 기자 =
모닥불 속, 대화마다 쏟아지는 철학의 ‘이삭줍기’

“바쁠 때는 세 곡을 동시에 작곡합니다. 그런데 가사 딸린 성악곡을 동시에 작곡하면 정신없어요. 헷갈리죠. 한번은 오페라 황진이와 칸타타 ‘베들레헴에서 갈보리까지’를 동시에 작곡하는데 너무 헷갈려서 방 두 개를 사용했어요. 한 개는 ‘황진이 방’ 한 개는 ‘칸타타 방’으로 나눈 거지. 어느 야심한 밤, 2층에서 작곡을 모두 끝내고 호치키스로 수십 장의 파트 보를 ‘찰칵찰칵 탕탕탕탕’ 계속 찍고 있는데 1층에서 잠자고 있어야 할 아내가 2층 방으로 헐레벌떡 용수철처럼 튀어오는 거야.”

‘여보! 놀랬잖아요.’ 이영조 선생이 무리하게 작곡한 끝에 과로로 쓰러진 뒤, ‘나 살려 달라’는 신호로 방바닥을 두드리는 줄 알았다는 것이다. 이영조 선생은 작곡가의 아내가 아니고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일이라며 껄껄 웃는다. 바베큐 파티에 모인 음악인 모두 목젖이 활짝 보인다.
여름이면 저 먼 골짝까지 메아리치는 개구리들의 합창을 감상하고, 가을이면 소슬한 바람이 연주하는 풍경(風磬)소리 아름다운 곳. 늦가을이면 직접 뽑은 무청을 말리고 시레기로 변하는 과정을 묵상하며 밤이면 사랑하는 제자들과 함께 ‘클리닉데이’, ‘쉐프데이’라는 미명 아래 마당에 장작불을 피우고 음악에 대해, 사랑에 대해, 인생에 대해 화담(和談)하는 곳. 작곡가 이영조 선생이 사는 집이다. 인터뷰 차 방문했지만 운 좋게도 바베큐 파티의 ‘꼽사리’로 방석 하나를 차지했다.

TLI아트센터 박평준 관장, 작곡가 박정양 교수 등 지인들이 함께 하는 늦가을의 파티. 얼마나 운치가 있던지. 이날 파티는 한편의 영화였다. 1분 30초마다 시선을 집중시키는 할리우드 영화처럼 이영조 선생은 개그보다 더 개그에 가까운 해학과 골계의 이야기보따리를 전기수(傳奇叟)처럼 줄줄 쏟아냈다. 이영조 선생과 진지한 인터뷰를 기대하고 갔다가 ‘아픔’도 ‘유쾌한 통증’으로 요리하는 입담에 ‘진지한 부분’을 모두 망각하고 말았다. 그러나 유쾌한 이야기 뒤에는 반드시 뼈있는 철학으로 끝났기에 얼마나 다행인지... 오죽하면 배석한 박평준 관장이 ‘교수님의 이야기는 어느 한 구절 버릴 게 없는 교훈덩어리’라고 했을까? 예를 들어볼까?

‘아무리 못나고 괄시받는 선배라도 후배보다 낫다.’‘교수와 학생 사이에 거리가 있으면 교수는 도대체 누구하고 놀까? 교수와 학생은 거리가 있으면 안돼.’‘음악가들이 실력이 없을 때 떼를 짓는 것이지, 음악 최고의 특혜는 자유(自由)인데 말이야.’
‘스파게티, 짜장면, 청국장 어떤 음식이든 즐길 수 있지만 메인은 역시 한국 음식, 음악도 마찬가지야.‘ ‘20대로 돌아가고 싶냐고? No! 한번 한 것을 다시 하고 싶지 않아. 젊은 사람이 나이탓 하면 이렇게 묻곤 하지. 너희들 늙어봤어? 난 젊어봤다!’

대화 중에 툭툭 던져진 말들이지만 우리 모두는 이영조 선생이 흘린 이삭을 열심히 주워 담았다. 이렇게 흥이 넘치는 작곡가는 사실 보지 못했다. 노 작곡가의 부파적 이야기 때문에 이날 파티는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시카고에서 있었던 일이다. 아들을 태우고 2시간 이상 운전한 끝에 목적지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데 ‘아뿔사’ 신발이 보이지 않았다. 자동차를 집으로 착각해 차에 오를 때 신발을 주차장 바닥에 벗고 탄 것이다. 운전하는 동안 머릿속으로 오페라 ‘처용’(1987)을 구상하느라 맨발을 의식하지 못했다. 어디 이뿐이랴.
 
모닥불이 활활 타오르는 만큼 음악을 향한 이야기도 깊어갔다. 요즘의 작곡 경향으로 대화의 물꼬가 터지자 우리도 현대음악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기억에 남을 만한 선율의 음악을 창작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1970년대 독일의 작곡은 과거 작곡법에서 탈출하기 위해 기존의 멜로디와 화성을 깨트리기 시작했어요. 메노티 같은 작곡가의 작품이 획기적이지만 효과음악 같고, 아름답기 보다 조성이 없는 음악이었지. 지금은 베토벤 시대와 달리 제트기와 자동차 소음도 음악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이었죠.”

멜로디는 없고 사운드가 있는 그런 음악이 출현했지만 일반인들에게는 너무 어려운 음악이었다. 그래서 등장한 게 슈니트케, 펜데레츠키나 윤이상처럼 다시 선율을 찾는 음악으로 회귀했다. 그러나 우리 작곡계는 여전히 70년대 음악에 머무르고 있다. 이영조 선생은 그 70년대 33살의 늦은 나이에 독일에서 공부했는데 그런 경향에 미칠 것만 같았다. 결국 그는 반(反)독일풍 작곡가가 되기로 결정하고 판소리와 같은 우리 음악을 응용해 작곡하기로 했다. 당시 독일의 지도교수도 이런 이영조의 성향을 정확히 파악하고 ‘네 곡의 색깔은 바꿀 수 없으되 그 방향을 살려서 공부하라’고 지침했다.

“우스개 소리지만 음악성 없는 작곡가는 현대음악 쓰기가 더 쉽다고 해요. 계산에 의존할 수 있으니까. 이미 70년대에 횡행하던 현대음악을 지금 독일에서는 ‘아우게 무직’(Auge Musik) 즉 ‘눈으로 보는 음악’이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박정양 교수가 고개를 끄덕인다.

“현대음악을 쓰는 분들 중 기본적인 소나타, 푸가, 바흐 코랄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분들이 너무 많은 게 사실이죠. 그런 음악은 낡고 늙은 게 아니잖아요. 음악의 오래된 기본과 기초가 되는 거지요.”


해외에서는 우리 가락 담긴 창작곡을 요구

12음기법이란 간단히 말해 검은 건반을 포함해 12개의 음을 순서적으로 모두 사용하는 음악이다. 조성음악이란 일정한 조성을 중심으로 음들이 ‘떠났다 돌아오기’를 반복하는데 현대음악은 나머지 11개를 다 사용하기 전에는 같은 음을 다시 쓰지 않는 수법의 음악이다. 감정을 제어한다는 의미에서는 논리에 맞지만 아름다운 소리와는 별개의 문제다. 그런데 아직도 우리 작곡계는 이런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단다.

“우리는 ‘휩쓸림’에 약합니다. 독일에서 이미 한물 건너간 현대음악이 최고인 줄 알고 있어요. 우리는 우리만의 음악문화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라는 단어도 문화가 있습니다. 서양에서는 ‘My wife, My mother’라고 하지만 우리는 ‘우리 마누라, 우리 엄마’라고 하거든요. 베토벤 교향곡도 1, 2번은 하이든 모차르트의 영향을 받지만 3번부터는 자신이 등장합니다. 어릴 때는 서양음악 그대로 배울 수 있지만 성장한 후에는 자기 색깔이 있어야 하죠.”

데미안의 ‘아프락사스’처럼 알을 깨고 나만의 세계를 가져야 한다는 말이렸다. 이는 비단 작곡계만의 문제는 아니다. 서양음악이 들어 온지 얼마나 되었나. 그런데도 아직까지 우리 것은 세우지 못한다면 그건 종속문화가 되는 것 아닌가? 이영조 선생은 특히 작곡계에서 종속문화가 두드러진다고 설명한다.

“우리 연주자나 해외연주자들이 한국작품을 연주하려고 해도 우리 음악을 찾지 못해요. 내가 이렇게 이야기하면 ‘내셔널리즘’이라고 비판하는 분도 있겠지만 절대 아닙니다. 요새 제 작품이 해외에서 자주 연주되는 이유는 해외연주자나 청중들이 한국작품을 원하기 때문이에요. ‘베토벤 쇼팽 그런 것 말고, 당신 나라 작품은 없느냐’ 이렇게 묻습니다.”

그러면 이영조 선생은 우리 음악을 서양음악에 어떻게 실었을까? 예컨대 ‘황진이 시조에 의한 6개 노래’를 보자. 사실 음악회를 할 때 단순히 민요만으로 독창회를 열 수는 없다. 민요를 소재로 하되 예술적으로 증폭시켜야 한다. 대부분 작곡가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한다. 오히려 그런 창조적인 의견을 제시하면 21세기에 왜 굳이 한국적인 것을 찾느냐’며 반문하기도 한다.
“아니거든. 21세기니까 더 찾아야 해요. 다른 나라 곡과 교류하려면 내 것을 보여줘야 하니까.

. 요즘은 국제 작곡콩쿠르에 나가면 ‘당신 나라 작품을 연주하라’고 하는 것이 규정으로 바뀌기 시작한지 오랩니다. 콩쿠르는 재주만 보는 게 아니라 문화의 만남이에요. ‘파가니니 스타일’이 아니라 그들은 ‘한국스타일’을 원합니다. 문제는 작곡가들이 우리 음악을 심도있게 배우지 못했습니다. 작곡과 졸업 작품에 국악악기 몇 개 넣는 것이 전부인데 이것만으로는 안 되죠. 그래서 나부터 하자는 뜻으로 열심히 우리 음악을 작곡했는데, 지금 해외에서 제 곡을 많이 연주하는 것은 전부 한국적인 이디엄이 들어간 거랍니다.”

해외 활동 연주자들은 이영조 선생의 작품을 찾는다. 그러면 왜 작곡가들은 우리음악 작곡에 주저할까? 교육도 문제지만 작곡가 본인들이 ‘국악’ 하면 겁을 낸다. 더구나 누군가 서양음악 작곡가에게 국악을 심도있게 가르쳐준 일이 없다. 지금은 그 두 분야가 절실하게 만나야 야 할 융합 시대 아닌가.

민요 살풀이 등 우리 속악을 더욱 사랑

이영조 선생이 우리 음악 작곡의 중요성에 대해 각성한 시기는 대학생 때. 정확히는 64년 대학 2학년 때 8군사령부에 통역병으로 입대했을 때다. 당시 작전사령관과 시립교향악단 음악회를 감상한 적이 있다. 그 분과 동행하면서 쇼킹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시아 음악과 우리나라 악기에 대해 한국작곡가들보다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우리가 ‘우리 악기’라고 알고 있는 비파 등 대부분의 악기가 한국악기가 아니라 당나라 악기라는 것. 정악으로 불려진 ‘궁중 음악’은 모두 당나라 음악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윤이상 작품 중 ‘수제천’ 등을 평가할 때 우리음악을 현대화했다고 하지만 그의 시각으로는 중국의 당나라 음악을 현대화했다는 것이다. ‘수제천’은 중국의 황제 이야기를 다루고 있잖은가. 문묘제례악 역시 마찬가지다.

“진짜 우리음악은 살풀이, 민요 이런 것들이에요. 그런데 멀쩡한 우리 음악을 두고 속악이라고 하면서 중국음악을 정악이라고 하는 건 모순이죠. 정악하는 분들은 우리 민요를 음악 취급하지 않아요. 한·러수교 10주년 당시 국악인들을 데리고 러시아에 간 일이 있었는데 소위 정악 하시는 분들이 ‘민요는 안 하겠다’고 하더군요.”

민요를 아주 상놈 취급하는 건 지금도 여전하다. 분명 잘못된 일이다. 정악과 민요의 음악적 깊이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건축 구조에 비교한다면, 정악은 제대로 지어진 몇층 짜리 건물이고, 우리 음악은 초가집이나 닭장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영혼은 속악(俗樂)에 담겨있다. 아리랑 몇 마디로 오케스트라로 만들면 독일 친구들은 장단이 쉬우면서도 구비 구비 굽이치는 우리 가락에 푹 빠진다. 민요라도 ‘오케스트라’라는 구조의 힘을 빌리면 ‘한국 음악도 건축처럼 깊이있는 음악으로 갈 수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발전된 현대의 감각을 갖고 말이다. 이영조 선생의 말이다.

“유럽에서도 자기 나라 민요를 소재로 작곡한 경향이 있었잖아요. 러시아 5인조가 그랬고, 바르톡, 코다이 전부 그랬습니다. 윤이상 선생님도 그런 분들 중 한 명이고요. 제 스승 중에서도 판소리만 가지고 작곡하신 분도 계십니다. 윤이상 선생님은 궁중음악을 갖고 작곡하기도 했고요. 저는 우리의 숨결이 살아있는 모든 음악이 다 좋습니다. 판소리, 풍류, 민요, 살풀이, 농악 다 좋아요. 호텔에서 먹은 음식도 맛있지만 우리 5일장에서 먹는 음식도 기가 막힙니다.”

서양음악을 빌려 썼으면 이제는 우리 것을 작곡해야

이영조 선생의 작곡의 기저에 흐르는 강물을 더듬어보았다. 우리정서를 온몸에 지니고 있는 근원 말이다. 혹시 어린 시절 오랫동안 시골에서 성장했을까 싶었는데 그건 아니었다. 그러나 강렬한 경험이 있었다. 6.25때 이영조는 초등 2학년이었다. 피난길에 나섰지만 부산까지 가지 못하고 천안에서 주저앉았다. 인민군이 피란민들보다 앞서 부산으로 진격한 까닭이다. 

“천안에서 겪은 시골생활과 놀이가 너무 재미있었어요. 원두막에서 놀다 쥐불놀이하고, 수박서리, 잣치기, 말뚝박기, 메뚜기 개구리 구워먹기 이런 걸 즐기면서 전쟁 통에서 신세계를 발견한 거예요. 전쟁이 무섭다거나 이런 건 몰랐어요. 제가 서울에서 살지 않고 25년 동안 이 시골에서 사는 것도 그때 경험한 시골생활의 연장이에요. 땅위를 걸으면 대지의 에너지, 땅의 기운을 느껴져요. 마치 유년기로 돌아가는 기분이거든. 그래서 개구리 소리를 듣고 ‘개구리 밤학교’를 작곡했잖아요.” (1958)

그랬다. 지난 11월 2일 경주 한국공연예술포럼에서 만났을 때 유투브로 들려준 개구리 밤학교, 어쩌면 이런 아이디어가 나올까 싶었는데 역시 그 저변에는 시골사랑이 깔려있었다. 그는 도시에 갇히기를 싫어한다. 학교에서든 한국음악교육진흥원이든 오후 네시만 되면 마음은 벌써 시골집으로 향한다. 흙을 밟고 채소를 직접 가꾸고 목업(木業)을 위해 연장을 들기도 한다.
“음악은 결국 삶을 반영하는 거예요. 독일에서 4년(뮌헨국립음악대학), 시카고 10년 (아메리칸뮤직 콘서바토리 대학원)이라는 외국생활이 오히려 더욱 내 것을 찾는 동력이 되었는지 몰라요. 외국에서는 오히려 화음구조가 다른 우리만의 소리를 요구했거든요. 어려서는 서양 작곡을 배울 수밖에 없었지만 성장하면 ‘그동안 우리가 서양음악을 빌려 쓴 거구나’ 하고 깨달아야 합니다.”

작곡가는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해야

그렇다고 앞서 밝혔듯이 우리 작곡가가 창작하면 우리 음악이라는 오해를 하지 말아야 한다. 우리 요리사가 스파게티, 짜장면을 잘 만든다 해도 그건 우리 음식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이태리 음식, 중국음식일 뿐이다. 사실 ‘한국 작곡가들이 쓴 건 아름답지만 분명 한국적이지 않은 작품 투성이’라고 스스로 비판하는 작곡가들이 있는 반면, 거꾸로 ‘왜 꼭 한국적이어야 하느냐’며 되묻는 이도 있다.

“좋은 질문이죠. 왜냐햐면 우리게 없으면 종속문화, 종속음악이 돼요. 아무리 잘 작곡해도 그건 이태리 부스러기이고 독일 부스러기를 갖고 놀 뿐입니다. 크게 보면 그건 자아(自我)가 없는 우리 정서와 동떨어진 작품이 돼요. 저희 선친(작곡가 이흥렬)께서 작곡하신 ‘섬집아기’ 들어보세요. 이 나이에 불러도 참 좋거든요. 그 음악을 잘 들어보면 멜로디에 아리랑이 있습니다. 첫 구절을 계명으로 불러 보세요. 또 진짜 사나이는 어떻습니까? 아리랑이에요. 우리 정서가 이런 겁니다. 그런 작곡을 할 수 있게 우리 작곡가들을 교육적으로 키워야 해요.”

이런 시대적인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왜 그런 작곡가들을 양성하지 않을까? 양성하기는커녕 유럽에서는 이미 버려진 70년식 현대 음악을 우리는 여전히 신봉하고 있지 않은가. 청중이 알아듣지도 못하는 무조음악만을 생산해내는(무조음악이 비예술적이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관성(慣性)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이영조 선생은 그 이유 중 하나로 ‘이지 고잉’(easy going)을 꼽는다. 쉬운 말로 쉽게 따라가기.

“고인 물이에요. 고인 물은 썩기 마련입니다. 작곡가는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해야 하죠. 자기음악을 소화하면서 가야하는데, ‘쟤가 무조하네? 그럼 나도 해야지’ 이렇게 모방만 하려고 해요. 언젠가 정명화 선생 마스터클래스에 갔어요. 한 학생이 정 선생과 똑같이 연주하자 크게 나무라더군요. ‘왜 나처럼 연주하느냐’는 거예요. ‘네가 대학원생이면 네 자신의 음악이 나와야 할 나이야, 대한민국 연주자들이 다 정명화처럼 연주하면 좋을 것 같아?’ 이러는 거예요. 연주자가 이럴진대 작곡은 어떻겠어요.”

그렇다고 우리에게 민요나 국악 등 우리음악을 주제로 하는 작곡활동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런데 어쩐지 아름답지 않다. 왜 그럴까? 이영조 선생은 우리 음악을 작곡한다지만 화음은 구식(舊識)을 사용한다거나 아예 화음을 사용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초고층 유리빌딩에 고추 달고 숯 단다고 그게 아들 낳았다는 기쁨의 우리 전통문화가 돨 수 없는 것처럼... 그는 한국예술영재교육원 학생들을 지도할 때, 우선 ‘예쁜 음악을 쓰라’고 가르쳤다. 음악은 우리음악을 재료로 하더라도 미학(美學)이 앞서야 하며, 이론은 그 다음의 문제라고 말한다. 이론에 맞춰 음악을 만들면 자연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이론은 설명할 수 없는 아름다움 음악을 지원하는 작은 도구라고 믿는다.

“아름다움을 위해 이론은 양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쇤베르크의 12음 기법 같은 것을 반박할 수는 없어요. 주관적인 감정표출이 주는 아름다움보다 이성과 논리의 사고니까요. 아름다움을 위해 다른 것들은 허용할 수 있어야 하는 거예요. 음악계에 ‘사조’(思潮)가 형성되면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그래도 반론이 나와야 진보합니다. 우리에게는 반론이 없습니다.”

이영조 작품, 우리 산세와 닮은

만약 반론을 제기하면 어떻게 될까? 후배들은 그 사실을 선험적으로 알고 있기에 감히 도전이나 반론을 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대한민국에서는 주류(主流)가 주는 불이익을 감당할 공간이 없는데다 반론을 제기하기 위해서는 치열한 자기공부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럴 용기와 끈기가 우리에게는 부족한 것 아닐까? 베토벤은 ‘아름답기 위해서 비틀지 못할 규칙은 하나도 없다, 단 규칙을 다 써본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이런 말을 했단다. 공부를 다 한 사람만이 그렇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모든 음악인들이 이영조 선생의 의견이나 작곡계가 가야할 방향에 대해 동의하는 것은 아니리라. 작곡가는 각자의 고집이 있다. 그러나 그들이 동의하지 않더라도 본인의 작품이 국내외적으로 인기를 얻고 이역만리에서도 자주 연주되는데 그 얼마나 기쁜 일인가.  

“자부심을 느끼죠. 페이스북에 제 작품이나 연주회 영상을 올리면 열기를 뜨거워요. 어제도 곡 하나를 올렸더니 삽시간에 1,600명이 봤어요. 네트웍이 쉽게 연결되면서 도서 각처에서 제 생각과 비슷한 젊은 교수들도 몰려옵니다. 그래서 이런 활동이 필요하다는 거예요. 일전에 이숙종, 윤여민 같은 분들과 함께 파리에서 연주회를 했는데 한복을 입었습니다. 그랬더니 파리 청중들이 한복을 보고서야 왜 한국음악이 서양과 다른지 이해하겠다고 해요. 파리의 수준이 높은 거죠. 한복에 ‘너의 음악이 다 보이더라’ 이렇게 말하는 건 대단한 일입니다.”

이영조 선생은 우리음악을 작곡할 때 조성음악만 구축하는 게 아니다. 무조도 많다. 예컨대 오케스트라의 경우 현, 금관, 목관 등으로 갈라지고, 현도 제1, 제2로 나뉜다. 각 파트별로 조성을 쓰는데, 제1바이올린 다장조, 비올라 올림바장조, 관악은 라장조 등으로 작곡한 후 한꺼번에 들으면 무슨 화성인지 모르지만 각 파트의 연주자들은 같은 조이기 때문에 헷갈리지 않는다. 이런 식의 복조성과 헤테로포니로 중심조성을 깨는 방식을 많이 사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데 이영조 선생의 작품에는 늘 선율이 느껴진다.

왜 그럴까? 그는 흥미롭게도 우리 산야의 ‘이미지 흐름’과 비교한다. 여행길에 우리 산야를 보면 탄성이 나온다. 첩첩히 출렁이는 산을 보노라면 앞산은 선명하게 보이고, 그 뒤에 포개어진 산들은 점점 불분명하고 희미해진다. 그 엉킨 산야를 멀리서 보면 전체의 선이 분명하게 보인다. 이영조 선생의 작품이 이런 산세(山勢)와 닮았다. 현란하고 어려운 화음이 나오지만 어느 순간 아름다운 선율이 분명해진다.
 

서양음악의 틀에서 벗어나고픈 반독일적 반미국적 의식

이번에는 거시적인 한국음악사에 대해 물어보았다. 현대사의 굴곡진 변화가 음악사, 특히 작곡사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해방 이후 북한은 소련의 영향권, 우리는 미군의 영향권으로 들어가면서 미국경제와 문화, 정치 세계에까지 미국문화가 우리문화를 점령하게 된다. 이영조 선생은 이 점이 개운치 않다.

“그래서 독일에 갔을 때는 반독일적 작곡가가 되고, 미국에 다녀와서는 음악적으로 반미국적 작곡가가 된 거예요. 외국에서 공부하고 오면 너무 그 문화에 경도되어 종속하게 되는데 이러면 우리 음악을 할 수가 없잖아요.”

이영조 선생이 독일과 미국에서 오랫동안 공부하면서도 우리 음악의 줏대를 잃지 않은 것은 부친 이흥렬 작곡가와 나운영 교수의 영향이 적지 않다. 이미 쇤베르크 메시앙 등의 작곡법을 모두 섭렵한 가운데 이 두 어른의 우리음악 사랑이 가미되면서 훨씬 강렬한 화음을 구사할 수 있었다.

“현대작곡가들은 그러면 ‘내 화음은 뭐냐’ 하고 묻고 분해해봅니다. 그런데 분해가 안돼요. 그게 제 음악을 특징입니다. 이영조는 서양음악의 강요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었거든요. 그들의 틀로 해석할 수가 없죠.”
서양음악으로부터 자유롭다고 해서 ‘국수주의’를 표방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가. 융합시대다. 음악 형식으로 보면 서양음악은 소나타, 협주곡, 오페라 등 형식적인 면에서 나무랄 데가 없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그릇에 불과하다. 그릇 안에 음식만은 내 것을 넣겠다는 게 이영조 선생의 생각이다.

“세계음악사를 가르치다 보면 기라성 같은 연주가에 대해서는 전혀 이야기가 없어요. 작곡가 중심입니다. 작곡가들은 자아(自我)를 드러내는 사람들이고 그게 사회 의식을 반영하고 선도하기 때문이에요. 그릇은 서양음악을 사용하더라도 내용은 우리 자아를 담아야 한다는 말이에요. 그것은 연주가가 아닌 작곡가들이 하는 일입니다.”


외형과 표피만 좋아하는 풍조 바뀌어야

여기서 조금 흥분된 질문을 던졌다. 음악사에서 자아를 드러내는 중심이 작곡가라면 요즘은 왜 작곡가를 홀대하는지 물었다. 작곡가야말로 문학, 미술 등 다양한 장르와 연계해 예술의 방향을 설정하고 이끌어가는 중요한 견인차인데 연주자들이 홀대는 건 그렇다 하고, 작곡가 스스로도 시대를 이끌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하자, 이영조 선생은 ‘김 사장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우리 문화가 전반적으로 표피적입니다. 겉만 중시하죠. 예전에 ‘황진이’ 공연 포스터에 작곡가 이름이 없었어요. 이게 말이 안 되죠. 그리고 청와대에 초청장을 보내는데 연주자 이름만 잔뜩 써 넣고 작곡가 이름은 다 빠져있더군요. 그저 외형만 중시하고 무대에 등장하는 연주자만 보면 그만이라는 얕은 사고방식이죠. 조성진이 쇼팽콩쿠르에서 우승한 후 수많은 인파가 몰렸는데 조성진 연주만 보러 온 게 아니에요. 현장에 가보니까 영화배우 레드카펫 구경하는 마음으로 온 부분도 상당해요.”

그런데 이런 천박한 의식이 하루아침에 바뀔 리가 없다. 어릴 때부터 ‘내용’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의식을 길러줘야 하지 않을까.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원장과 한국예술영재교육원 원장 등 영재교육에 오랫동안 재직해온 이영조 선생은 지난 2013년부터 지금까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다. 교육이 국민성 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국민의 근성이 얼마나 어렵게 바뀌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우리 아이들을 교육한다고 해서 금방 바뀌지는 않아요.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예산을 책정할 때 이런 점을 늘 강조하는데 지금 받는 예산으로 약 50년은 계속 가르치고 깨우치게 해야 바뀔 겁니다.”

어린이들부터 합리적인 다른 독일의 음악문화

이영조 선생은 사람이 살아가메 통과의례를 순차적으로 거치면 삶의 각 단계를 이해하는 폭이 넓어진다고 말한다. 내 손주가 생기면 남의 손주들이 모두 이쁘고, 내 새끼가 있으면 다른 아이들도 한없이 이쁘다. 국회에서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예산을 따낼 때 국회의원들과 씨름을 하는 일이 많다. 그는 그때마다 ‘저 의원들이 빨리 손주를 낳아봐야 아이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지’ 하며 혀를 차곤 한다.

인터뷰 끝에 무지한 질문을 했다. ‘요즘도 작곡할 게 많나요?’ “어제도 했는데 뭘... 2018년 1월 베를린에서 연주할 곡을 의뢰한 김영신 전주대 교수의 곡, 안미현 교수의 피아노, 대금, 해금 과 장구를 위한 곡, 위스콘신 주에서 일주일동안 내 작품 열댓 곡으로 세미나 하는데 그곳에서 발표할 15분짜리 심포닉 밴드 작품, 김포 아트실비아에서 의뢰한 목관 5중주곡 등 지금부터 상반기까지 죽 작곡해야 해요. 작곡은 애 낳는 것과 같아요. 예전에는 새벽 2~3시에 작곡이 잘되었고 밤도 곧잘 샜는데 아휴! 이제는 못해. 하하. 그래도 몸 관리는 잘해요. 매일 곤봉체조도 하고 직접 무청도 자르고 밭농사도 짓고...”

모닥불 한켠에 놓인 손때 번질번질한 곤봉을 봤다. 요즘 시대에 누가 곤봉체조를 하겠나 싶었는데 시범을 보이는 이영조 선생의 몸놀림이 국가대표에 나가도 손색이 없다. 음악이든 생활이든 이영조 선생의 지혜(智慧)의 샘은 도저히 다 풀어낼 수가 없다.

멀리 베를린에서 이영조 선생의 곡을 입학시험 곡으로 연주하겠다고 연락이 온 한 독일 고등학생. 이영조 선생은 어린 학생이기에 그냥 사용하라고 했지만 고맙다는 말과 함께 ‘나는 작곡가를 응원하고 싶다는 말과 함께 11 유로를 송금하더라는 얘기. 저작권과 악보비를 파트보 장수만큼 일일이 계산해주는 Wien의 Konzert Haus Orchestra의 합리성. 유럽 특히 독일음악계가 참 부럽다고 한다. 그에 반해 창작곡을 무대에 올려주면서 작곡가에게 큰 선심을 쓰는 양 ‘무료 꼼수’만을 생각하는 우리 연주자들의 좁은 소견을 생각하면 아직도 갈 길이 멀고 먼 것 같아 안타까워한다.

인터뷰 전 과정이 끝날 때쯤 바베큐 파티의 모닥불도 식어갔다. 서울로 돌아갈 시간이다. 박평준, 박정양 교수도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다들 자주 놀러와, 서로 머리를 맞대면 좋은 일들이 있을 거야.” 다른 교수들은 몰라도 기자는 다시 올 것을 다짐했다. ‘지혜의 지상강의’로는 아직도 퍼낼 지혜가 너무 많은 까닭이다.  (글 : 뮤직리뷰 발행인 김종섭, 사진 조기웅)

임규태 기자 cenews1@daum.net/웰빙코리아뉴스(www.wbkn.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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